|
|
|
붕어 다섯마리.... (단편) 글/살림망67
|
|
오래전 서울 변두리에도 논농사를 짓는 가구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살았던 집에서 멀지않은곳에 자그마한
농수로가 흘렀고 자그마한 둠벙도 드문 드문 논자리사이에
붙어있던 광경이 어렴풋이 떠오르곤 했다. 당시엔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수로에서 종종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고 가끔 물가에 몰려있는 송사리를 고무신으로
잡아 물병속에 넣어놓고 그놈들의 활기넘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개구리를 잡으로 작은샛수로를 뒤지며 돌아다니다
둠벙에서 마을 아저씨 세명이 커다란 그물로 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엊그제 부터 많은비가내린 터라 하류에서 올라온
커다란 붕어와 잉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던것 같았다.
가슴까지 물속에 들어가 양쪽에서 그물끝을 잡고 수초사이를
둘러싸자 수면위로 튀어오르는 커다란 고기의 모습에 나는
둠벙위에 쪼그려 앉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 보았다.
그물을 건져내어 물가로 끌고나오자 그물에 걸려 퍼덕거리는
가지각색의 고기들의 은빛어린 모습은 햇쌀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커다란 붕어와 잉어 그리고 미꾸라지등을
양은양동이에 담아두고 작은고기들은 다시 물가에 놓아주었다.
그렇게 한나절을 구경하는 나에게 그중에 한 아저씨가 새끼붕어
라며 그물에 걸려나온 감잎만한 붕어 열댓마리를 비닐봉투에
담아주었다. 나는 혹시나 붕어가 죽을까봐 수로의 물을 담아
집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집으로 오자 달리 고기를 담아둘 만한곳이 없었다. 그래서
마당에 있던 빈장독에 펌프질을 하여 물을 담아두고 그곳에
붕어를 놓아주었다. 이리저리 꼬리를 흔들며 항아리속을
헤엄쳐 다니는 놈들의 모습이 너무도 멋있다는 생각을 하고
몰래 부엌에서 밥알을 가져와 던져주었다. 그런일이 있은후
나의 일과는 학교를 갔다와서 제일먼저 장독뚜껑을 열고
바가지로 물을 어느정도 퍼내고 새물을 갈아주어야 했고,
녀석들이 잘먹는 미숫가루를 방앗간을 하시던 작은고모집에서
조금씩 얻어다 물에 게어 던져주는일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 서너마리는 일주일도 넘기지못하고 물위에
떠올라, 죽은붕어를 보고 무척이나 슬퍼했다. 죽은놈들은
마당의 한켠에 땅을파서 묻어주고 나뭇가지를 엇갈리게 묶어
작은십자가를 만들어 그곳에 세워주었다. 지금생각해보면 놈들은
장독에 갇힌상태로 뜨거운 여름햇살을 버티어내지 못했던것
같았다. 한달여가 지나자 열다섯마리의 붕어중에 다섯마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마당의 작은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나머지 다섯마리는 참으로 오랫도록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놈들은 내가 장독뚜껑을 열고 먹이를 주려하면 모두
수면위로 올라와 입을 뻐끔거리며 몰려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붕어란 어종의 낮은지능으로 어떻게 주인의 모습을 기억했을까
의야스러운 점도 있지만 놈들의 행동은 분명히 그러했었다.
나는 나름대로 다섯마리의 붕어에게 개성에 맞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왕눈이,홀쭉이,먹돌이등... 이름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놈들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초여름부터 늦은 가을까지 나는 놈들을 가족들도 모르게
키웠다. 만약 발각이 된다면 십중팔구 붕어매운탕을 너무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저녁상에 틀림없이 올라올것임을 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어머니가 장독을 열어보실까 하루하루
긴장감으로 살았지만 어머니는 붕어를 담은 항아리는 단한번도
열어보시지 않았다. 아마도 입구가 약간깨져 있었던 그 항아리의
상태가 어머님의 관심에서 멀어졌었던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날도 집으로 돌아와 붕어와 정겨운 시간을 보내며 말없는
대화를 나누다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밤새 몹시도
몸이 아팠다. 머리에서 열도 심하게 났으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정도로 가슴도 아파서 해가 뜨자마자 아버지의 등에 업힌
채로 병원 응급실로 갔었다. 진찰결과 늑막염이었다. 원인이야
모르지만 아무튼 폐근처에 물이차는 병이라고 했다.
입원실로 옮겨져 커다란 주사로 옆구리에서 물을 빼내는 치료를
받는동안 두려움과 아픔보다 장독대에서 나를 기다리는 붕어들
걱정이 더 앞섰다.
입원한지 삼일째 되는날 나는 할수없이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이 상황에 무슨 물고기를 걱정하냐며 어서 몸이나
낫는데 신경쓰라며 혀를 차셨다. 나는 거의 울다시피 붕어들을
살려야 한다고 어머님께 떼를 썼으나 나의 모습이 한심하신지
어머니는 버럭 화를 내시고 병실을 나가시며 한마디 하셨다.
" 아마도 니가 매일 고기잡는다고 논바닥을 뒤지며 다니다가
몹쓸병에 걸린것이 틀림없을거야"
" 내가 그놈의 붕어들을 갖다 버리야겠다 "
나는 병실침대에 누워 하얀베게가 다 젖도록 엉엉 울었다.
장독안에서 뻐끔거리며 헤엄치는 녀석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며
한없이 서글픈생각이 들었고 진작에 물가에 풀어주지못한
후회와 죄책감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했다.
그렇게 몇일후 퇴원을 했다. 그동안 학교 담임선생임과 같은반
친구들이 면회도 왔었지만 별반 아무말 하지않고 시무룩해
있었다. 난생처음 아버지는 그당시 먹어보지못한 과일 통조림
을 사오셔서 국물까지 모두 마시며 이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있다는것을 알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왕눈이와 홀쭉이
먹돌이등이 살던 항아리는 꺼꾸러 엎어져 장독대 한켠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힘없이 발길을 옮기며 마음속으로
천국의 맑은 강물에서 녀석들이 자유롭게 다시 살길 빌었다.
어머니는 방안에 이부자리를 깔아주시며 누워있도록 하셨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누우려 앉다가 쌀통옆에 놓여진 낯선 물건을
보고 무심결에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바로 작은 수족관이었다.
작은 물레방아가 공기방울에 돌아가는 수족관 안에는 녀석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놈들과 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환하게 웃었고 어머님도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끝)
|
|
|
|